[진경수의 山이야기] SK ESG 경영의 발원지 인재의 숲 ‘인등산’
충주의 삼등산(三登山) 중의 하나[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충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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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등산 전경(SK수펙스센터 제공).ⓒ진경수 山 애호가
인등산(人登山, 해발 666m)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과 산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지극한 뫼 심으로 오르는 산이라 알려져 있다. 북쪽으로 천등산(天登山, 해발 807m)과 남쪽으로 지등산(地登山, 535m)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이루는 충주의 삼등산 중 하나다.
예전엔 먹고 사는 게 어려워 산을 개간하거나 땔감을 구하는 것이 예사였다. 그래서 민둥산이 많았는데 인등산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 벌거벗은 산이 지금의 푸른 바다의 숲을 이루고 SK ESG 경영의 발원지가 된 것은 산 이름처럼 사람의 지극한 정성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라며 인등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땡볕에서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나무들이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울울창창한 숲을 이뤄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보금자리가 됐다.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라는 그의 인재관에 따라 일군 숲이 환경(E)·사회책임(S)·지배구조(G)인 ESG 경영의 지표가 되고 있다. 이제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숲이 한 발짝 더 나아가 ‘탄소 크레디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 SK 수펙스센터 행복관.ⓒ진경수 山 애호가
열대야의 신기록을 남기며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때마침 밀려든 일감으로 미뤄두었던 산행을 오늘에서야 다시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지는 사람의 마음이 산의 마음이 되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충주 인등산이다.
친환경 목재로 지워진 ‘SK 수펙스센터’ 주차장에 도착한다. 정면으로 나지막하게 앉은 행복관 건물의 유선형 지붕이 지등산 산세와 어울린다. 자연과의 조화가 돋보이는 그야말로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전에 약속한 성웅범 SK임업 인등산 수펙스센터 소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어 SK 임업의 역사와 민등산 조림사업의 역사를 들으면서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인재와 숲에 대한 열정에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이뿐만이 아니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또 있다.
넷 제로 경영 로드맵을 담은 디지털 전시관에 들어서니 2030년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인 210억 톤 중 1%를 SK가 책임진다는 엄청난 계획.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시점보다 앞서 2035년 전후에 탄소발자국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지.
▲ 심기신 수련장으로 향하는 완만한 임도.ⓒ진경수 山 애호가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지구를 잘 보존해 미래의 후손들에게 돌려주려는 SK그룹의 진정한 마음을 온새미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SG 경영은 용어처럼 어렵지도 않고, 의미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아마도 필수적인 것 이상을 갖지 않고 숲과 함께 사는 게 아닐까.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선다. 산행코스는 「수펙스센터 주차장-야외강연장-인등산 정상-정재-천지인 전망대-돌탑마당-수펙스센터 주차장」으로 총 거리는 8.71㎞이다. 이 등산로는 SK 소유지이므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를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산불로 인한 기업의 재산 손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다. 만일 등산객들의 산불 예방 활동, 지자체에서 재산권 보장을 한다면 개방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수펙스센터에서 내려와 1.1㎞ 떨어진 심기신 수련장 방향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널찍한 임도 양쪽으로 쭉쭉 뻗은 나무들의 잎새들은 여름 땡볕과 사투를 벌이면서 녹색은 더 짙어져 길마저 푸르름으로 물들인다.
▲ 심기신 수련장.ⓒ진경수 山 애호가
풀숲에서 여린 줄기의 큰 키에 연분홍 꽃을 피운 한 포기의 풀협죽도가 반갑게 인사한다. 마치 이 숲을 조성한 주인공의 가슴속에 담긴 불타는 정열이 꽃으로 환생하여 다가오는 듯하다. 그렇게 완만한 임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은은한 소나무 향기를 품은 낙엽송들이 하늘에 닿을 듯 곧게 자란 심기신(心氣身) 수련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마음과 몸, 그리고 기(氣)’의 조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늘과 땅, 그 사이의 인간은 땅의 기운을 본받는다.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 법이다.
길은 서서히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산수국이 그 길을 반쯤 점령하고 하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호젓한 길을 지키려니 외로웠던 모양이다. 길손의 사랑의 눈길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렇게 팔을 뻗어 발길을 늦추려 했을까.
심기신 수련장에서 0.3㎞을 오르니, 인등산 정상(2.4㎞)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길 바로 옆에는 은빛 자작나무 숲이 조성된 야외강연장이 있다. 자작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느끼며 배움과 나눔, 추억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 은빛 자작나무 숲의 야외강연장.ⓒ진경수 山 애호가
야외강연장 옆으로 잘 정돈된 길을 오른다. 경사는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고, 길옆으로는 키 큰 하얀 속살의 자작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1970년대 이곳에 조림 수종으로 성장은 비록 더디지만, 활용가치가 높은 활엽수인 자작나무와 가래나무를 주로 심었다고 한다.
능선까지 가파르게 길을 오르자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린다. 아직은 산행 초반이라 그나마 여유가 있어 멀리 천등산을 바라보니, 예전에 겨울 산행으로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무얼까? 그건 아마도 오늘처럼 일상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변화를 맞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다림은 목이 늘어나고 물러섬은 미주알이 빠지며 머무름은 욕창이 생겨나니 그저 앞으로 나아감이 새로움을 만나 아름다움을 만끽하리라. 오늘 힘들어도 또 내일 산에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 자작나무 조림지.ⓒ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을 지척에 두고 길은 잔뜩 성을 내며 일어선다. 산이 그리워도 찾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에 벼르고 나선 산행이지만, 짊어진 배낭과 발걸음이 점점 무게를 더하는 듯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상념은 사라지고 오직 힘겨운 발걸음에 전념한다.
수펙스센터 주차장에서 2.4㎞를 올라 드디어 해발고도 518m 인등산 주능선에 닿는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지친 다리에도 잠시 쉴 틈을 준다. 이제부터 동서로 누운 능선을 따라 1.5㎞ 떨어진 인등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수펙스센터에서 인등산 정상으로 가는 이 코스는 두 군데 깔딱 구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완만해 SK그룹 연수생들의 산행코스 이용된다. 이 때문에 등산로가 잘 관리되고 있다. 반면 인등산에서 장재로 이어지는 코스는 급경사의 위험 구간이 많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빼곡하게 들어찬 숲길, 조망은 거의 없다. 등산로는 흙산에 가깝지만 자잘한 돌들이 많아 외려 돌산에 가깝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낙엽 밟는 바스락거리는 푹신한 느낌과 숲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한 숲 내음, 그리고 짧은 생에 최선을 다하는 매미 소리에 오감이 깨어난다.
▲ 인등산 능선(SK수펙스센터 제공).ⓒ진경수 山 애호가
동서로 뻗은 인등산 능선의 북향에는 가래나무와 자작나무의 조림지, 더불어 SK 기업연수원이 들어앉아 있어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뤘고, 햇빛이 잘 드는 남향에는 고스란히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푸른 숲이 더욱 찬란하다.
유순하게 이어지던 길은 가파른 경사로 모습을 바꾼다. 길옆으로 설치된 안전밧줄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이어간다. 석 달 내내 몸의 움직임이 없다가 오랜만에 산을 오르려니 힘이 곱절로 더 든다.
몸에 물을 쏟아붓듯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과 땀 줄기, 심장이 터질 듯하게 조여오는 압박감, 아직 적응이 덜 된 몸을 이끌고 오르려니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싶다. 배낭을 내려놓고 푹신하게 깔린 낙엽 위에 벌러덩 누어 몸을 산과 일체화시켜 본다.
에너지를 얻어 한 차례 더 가파른 길을 오른다. 능선 좌우로 경사가 제법 가파르고, 돌산이며 교통편도 없던 이곳에 50여 년 전 곡괭이와 삽, 지게와 물지게를 이용해 식재를 했던 옛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이 정도는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
▲ 인등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등산.ⓒ진경수 山 애호가
산 기운을 받고, 몸이 산에 익숙해 지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거친 숨소리도 잦아든다. 그러자 귓전을 울리는 매미 소리가 요란해지고, 싱그러운 숲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찬다. 나의 이 행복한 순간은 누군가의 노고 덕분이다.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선각자 SK 선대 회장의 뜻과 그것을 실천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렇게 일군 숲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있기에 이 아름답고 감사한 행복이 온새미로 내 것이 되는 순간이다.
하늘을 뒤덮은 짙은 초록색 산길을 걷노라니 생각도 마음도 몸도 온통 푸르름으로 젖어 든다. 지난 세월 반절은 회생으로 보상받는 듯하다. 그때 그 열정으로 불탔던 3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산에서 얻은 지혜로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속세의 상념을 잊고자 산을 찾았지만, 다시 소환된 삶의 이야기에도 산은 포근하게 보듬어주고 위로하며 안아준다. 처음 만난 석문을 지나면서 그런 새로운 문을 여는 용기로 삶을 살고, 외계인 모습을 띤 소나무 밑동을 보면서 훗날 후회 없이 살겠노라고 다짐도 해본다.
▲ 가래나무 조림지.ⓒ진경수 山 애호가
줄지어 세워진 작은 돌탑들, 수많은 정성과 손길로 쌓아 올린 돌탑들의 향연을 지나 짧은 암반을 걸어 오르니 드디어 인등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SK에서 세운 큼직한 ‘인재의 숲 인등산’과 충청북도·충주시에서 세운 ‘인등산 해발 666m’의 정상 표식이 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지극한 뫼 심으로 오른 인등산 정상에서 유일하게 조망할 수 있는 건 하늘의 마음으로 정성으로써 오르는 천등산이다. 초록의 숲 바다 위로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과 가을을 몰고 오고 있는 흰 구름,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사는 내 마음이다.
인등산 정상에서 1.8㎞ 떨어진 장재로 하행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얼마 내려가지 않아 헬기장을 지난다. 이후 가파르게 내리꽂는 급경사의 돌길, 밧줄은 무심하게 늘어져 있다. 조심스레 내려와 평지를 걷는 구간은 초록의 단풍잎과 빛이 환상적 멋을 만든다.
그런 호사도 잠시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단풍나무 가지가 지천으로 뻗어 길을 막아서고 아예 길을 내어줄 마음이 없는 듯하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어느새 전망대(0.8㎞) 갈림길, 장재까지는 아직 0.9㎞를 더 가야 한다.
▲ 모듈러 공법의 연수원 숙소.ⓒ진경수 山 애호가
전망대 가는 길이 험준하니 이용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어 장재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이내 가파른 내리막이다. 인생살이나 산길이나 굴곡이 있긴 마찬가지다. 오르막도 정상에서 끝나고, 내리막도 평지에서 마무리되니 그저 그렇게 사는 게다.
드디어 임도를 만난다. 전망대와 수펙스센터는 같은 방향으로 각각 1.5㎞와 4.5㎞, 반대 방향으로 동량이 6.8㎞이다. 이제부터 짙은 초록빛 터널의 임도, 그 생김새에 발걸음을 맡긴다. 한참을 걸어 천지인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올라 천등산과 다시 한번 눈을 맞춰본다.
또 다시 이어지는 임도, 신라 시대의 화랑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화랑우터를 지나고, 추자나무라고도 불리는 가래나무 조림지를 만나 다시금 옛사람에게 감사한다. 돌탑마당 삼거리에서 수펙스센터(0.9㎞)로 내려선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세워진 숙소를 만나다.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진우아이엔씨가 사용하는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져 특별히 공감대가 형성된다. 자연보호를 위해 필자가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이 고(故) 최종현 SK 회장을 닮은 것처럼….
모처럼 나선 인등산 산행에서 ‘나답게 사는 행복’의 발자국을 인등산에 남기고, 즐거웠던 산행의 추억을 가슴에 담아간다. 끝으로 오늘 산행을 위해 협조해 주신 SK수펙스센터 성웅범 소장께 감사드린다.
2024 / 09 / 23